유비 유상철 감독이 걸어온 길 (대한민국의 축구 레전드를 기리며)

    유상철 감독님을 추모하며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요'

    故 유상철 감독님을 추모하며

     

     지난 2021년 6월 7일, 2002년 월드컵 영웅, 유비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향년 50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아무리 췌장암 말기였지만, 충격적이고, 안타깝고, 결국 암에 굴복했다는 것에 너무 슬프다. 유상철 감독은 반드시 이겨낼 줄 알았고, 꼭 그러길 바랐기 때문이다. 

    출처 JTBC, 뭉쳐야 찬다 - 2002년 월드컵 레전드편, 유상철

     2020년에 방송된 JTBC '뭉쳐야 산다'에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 영웅이 한자리에 모였었는데, 당시에도 췌장암과 투병 중이던 그때의 밝고 건강하던 유상철 감독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반드시 암을 극복해서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복귀하고 싶다던 유 감독님. "약한 모습 보이기 싫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성원해주시고 완쾌를 바라고 있고 저로 인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치료 잘하고 이겨내겠다"라고 다짐하던 모습이 밟혀 고인이 되셨다는 소식이 오랜 시간 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선수로써 그라운드에서 보여줬던 투지와 투혼, 그리고 췌장암을 선고받고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대행으로써 보여줬던 의지력과 책임감 등 본받을 것도 많고 배울 점도 많았던, 그래서 더욱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유상철 감독이 그리워졌고, 그동안 걸어온 시간을 간략하게라도 기록하며 편히 쉬시라 추모하고 싶다.


    그가 걸어온 길의 일부분

    만능 멀티 플레이어, 유상철

    올 라운드 플레이어 - 유상철

     유상철 감독은 1971년 10월 18일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응암초 (4학년 때 축구를 시작), 경신중, 고(차범근 감독이 선배)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건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4년, K리그 전북 현대에서 프로 축구 선수로 데뷔를 한 그는 90년대 전반에 걸쳐 대한민국 축구에 큰 영감을 주었던 선수 중에 하나이다. 그는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수비수 (1994년), 미드필더 (1998년), 공격수 (2002년) 부분에 모두 선정될 정도로 최전방 공격수, 미드필더, 최후방 수비수까지 모두 소화 가능한(평균 이상 인) 올 라운드 플레이어이다. 프로 데뷔는 윙백, 국가 대표 데뷔는 스위퍼로 기용됐으며, 미드필더로 득점왕까지 차지했으니 말 다했다. 현시대에서 공격수와 미드필더로써 멀티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도 좋은 평가를 받는데, 유상철 감독처럼 골키퍼를 제외한 공격수부터 수비수까지 능통한 선수는 정말 드물고 귀하다. (대한민국의 루드 굴리트)

     

     어릴 적부터 다양한 포지션으로 기용되다 보니 ' 대체 나는 어떤 선수일까' 하는 포지션 변화에 따른 정체성 혼란이 왔다고 하는데, 그때의 그 고민들이 멀티 플레이어 유상철 선수를 만든 게 아니었을까?

     

    FIFA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영웅

     

     그는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그 후 1998년 FIFA 프랑스 월드컵,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2차례 참가하였고, 2개 대회 모두 골을 기록했다.

    1998 월드컵, 벨기에 전 유상철 골장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1차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3:1로 역전패,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5:0으로 대파한 후 그 자리에서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무리 월드컵 본선에서 유례없는 대패였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이 감독을 경질시켜버리다니. 그 정도로 패배에 대한 분위기는 험악했다. 그렇게 본선 3차전 벨기에와의 경기를 맞이하게 되고, 1:0으로 뒤지던 대한민국은 하석주의 왼발 프리킥 어시스트와 유상철의 슬라이딩 슛으로 동점골을 기록, 가까스로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이 났다.

    사실 가까스로라는 표현은 잘못됐고, 정말 대한민국 특유의 투지와 투혼을 보여준 경기라고 생각한다. 피부가 찢어져 피가 나는 상황에도 붕대를 감고 온 몸으로 벨기에의 슈팅을 막아내는 걸 보면 눈물이 나올 정도.

    2002년 월드컵, 폴란드 전 유상철 골장면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한민국의 첫 경기 폴란드 전, 유상철의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기록, 2:0으로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첫 승리를 가져가게 된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를 뒤바꾸는 순간이었다. 다시 봐도 소름 돋고 감동스러운 장면이다. 여담이지만 이 당시 유상철 감독 왼쪽 눈은 실명에 가까운 상태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주변(히딩크 감독에게도)에 숨기며 지내다 유상철 감독의 어머니께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한쪽 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한다. 그 때문에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훈련할 수 있었다고.

     

     국가 대표팀, K리그, J리그를 오가며, 축구선수로써 활동했던 유상철은 2006년 3월 12일 상무와의 K리그 개막전을 끝으로 울산 현대에서 축구선수로써 공식 은퇴하게 된다. 24년 동안의 선수 시절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동안 응원해준 많은 팬분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지만 곧 지도자로 돌아오겠다"며 선수 은퇴를 아쉬워하는 팬들에게 화답했다.

     

    '히딩크 감독은 처음부터 잘했을까'

     

     2006년 은퇴를 한 후 그는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2011년 7월 17일 K리그 대전의 감독으로 첫 프로 축구팀 지휘봉을 잡았는데, 선수 은퇴한 지 얼마 안 된 감독으로서 선수들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적은 예산으로 선수들을 영입하고 팀을 꾸려나가는데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특히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대전 감독을 그만두고 1년간 우울증 치료까지 받았을 정도라고 하니, 감독으로서 갖는 책임에 대한 부담이 엄청났던 것 같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했는데, 아마 이때부터 몸이 안 좋아진 게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크다. 

     

     그 후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취임해 좋은 성적을 내고 2018년 다시 K리그 전남 감독으로 부임하였지만, 부진하였고 강등권까지 떨어지게 되어 유상철 감독은 사임 의사를 밝혀 감독직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는 어느 한 인터뷰에서 '유상철은 실패한 지도자'라는 낙인이 생길까 두렵다고 했다. 대전이나 전남이 예산 많은 구단이 아니고 축구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라 지도자로서 많은 아쉬움이 남았는가 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출처 : 풋볼리스트(FOOTBALLIST)(http://www.footballist.co.kr)

     그리고 2019년 5월, 그는 K리그 인천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고, 췌장암 4기가 발견되었지만 시즌 끝까지 팀을 이끌며 강등 위기를 넘겼고, 치료로 인해 감독에서 사임하게 된다. 반드시 병과 싸워 이겨 복귀하겠다 이야기했던 유상철,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팬들은 그의 말을 굳게 믿었다. 유상철 감독이라면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반드시 이겨내고 돌아올 거야 하며 말이다. 하지만, K리그 대전 감독을 끝으로 그의 축구 지도자로서의 길도 끝나게 되었다.

     

    유상철을 놓친 바르셀로나 FC, 토트넘 훗스퍼, 풀럼

     

     1999년, 유상철이 K리그 씹어먹을 때 스페인 라리가 프로축구 구단, 바르셀로나 FC에서 오퍼가 있었다. 당시 유상철과 에이전트라고 계약한 사람이 중개인 역할을 했고, 바르셀로나로 가기 위해 비행기 표까지 예약을 해놨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바르셀로나 FC의 오퍼는 '영입 제안' 이 아닌 '입단 테스트'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이고, K리그를 호령하던 유상철은 '영입 제안이 아닌 입단 테스트는 안 받겠다' 라며 거절했고, 에이전트와의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어서 그의 바르셀로나행은 무산되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유상철 감독은 이를 후회하고 아쉬워했다.

     

     시간이 지나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에도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현재 손흥민 소속팀)과 풀럼의 영입 제안이 왔었다고 한다. 토트넘과는 최종 협상만을 남겨두고 있었고,  당시 소속팀 선수들과 작별인사까지 마치고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탈 날 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국엔 또 무산되었다. 그 이유는 에이전트의 이적료 협상과정에서 서로 안 맞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일월드컵이 끝나고 최상의 몸상태와 자신감을 갖고 있던 유상철도 이를 매우 아쉬워했고, 토트넘과 손흥민 팬인 나로서도 매우 아쉬운 결과이다. 대한민국의 굴리트를 놓친 토트넘이 제일 아쉬워야 할 텐데.


    유상철 감독님, 잊지 않을게요.

    유상철 감독님, 하늘에선 아프지 마세요.

     유상철 감독은 팬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선수로써 그리고 감독으로서 팬들과 앞으로의 포부, 계획 그리고 약속 등을 이야기하며 성장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비록 '완쾌해서 돌아오겠다'라는 마지막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대한민국 축구사에 영웅으로서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간직될 것이다. 그는 레전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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